[소식지-318호]
‘조국을 사랑한 죄가 너무 크다’
- 병석의 서옥렬 선생님을 뵙다
김혜순_회장
3월 중순쯤, 광주·전남의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서옥렬 선생님이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2월 9일 광주에서 열린 망백년(91세 생신 잔치)에 다녀오지 못한 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생님 댁은 광주 북구 각화동, 근처에 언니가 살고 있어 광주에 내려갈 적마다 선생님 뵐 생각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는데 이번 가족 모임차 방문하면서는 선생님을 문병하기로 마음먹었다.
3월 24일 낮에 선생님을 돌보는 활동가 오필주님과 '장기구금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인 박상춘 님을 화순지역의 한 행사장에서 먼저 만나 선생님의 병세와 송환추진위 활동에 대해 들었다. 선생님은 탈장과 폐에 물이 차는 증세로 광주 남구의 새미래병원 312호에 한 달째 입원 중이라 했다.
오랜 병환으로 치매 증세도 약간 있다고 했다. 병원식은 거의 드시지 못하고 컵라면, 두유, 맑은 호박죽 등을 마시거나 가끔은 김밥 등도 드신다고 했다.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나오는 병원비가 좀 벅차다는 이야기도 했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와 광주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축이 돼 작년 7월 25일 송환추진위를 결성하고 청와대와 적십자사 등에 살아서 북녘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촉구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강의 설명을 듣고 오후 5시에 선생님 병실에서 다시 뵙기로 하고 헤어졌다. 병원에 도착해 부랴부랴 병실로 올라가니 선생님 혼자 누워계신다.
5시인데 점심 밥상은 그대로고 물을 부어놓은 컵라면도 퉁퉁 불었다. 두유에 빨대를 꽂아 드리니 좀 드셨다. 활동가들이 아직 안 온 상태라 나를 몰라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용케도 선생님이 알아봐주신다.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살집은 하나도 없으시다. 다리를 주물러드리니 시원하다며 계속하란다. 어디가 젤 불편하시냐 하니 괜찮다 하시고 지팡이 짚고 거동도 하신단다. 얼마나 총기가 있으신지, 권오헌 명예회장님 건강 상태도 묻고 양원진, 강담 선생님의 안부도 물으시고 농도 하신다.
송환에 대해서는 말씀을 몹시 아끼셨다.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여기시는 것 같았다. 30여 분이 지나서야 활동가들이 왔는데 용돈을 조금 드리며 활동가들 맛있는 것 사주라고 하니 소년처럼 웃으셨다. 안 그래도 고운 선비 같은 선생님이 활짝 웃으셨다.
선생님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셔서 일기도 꾸준하게 쓰고 살아오신 이야기도 손수 써 책으로 냈는데 병실을 나서는 내게 오필주님이 ’조국을 사랑한 죄, 사형소리 여섯 번“ 제목의 책을 건넸다. 다 읽고 이 글을 쓴다.
1961년 남파돼 고향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길에 체포된 구순의 선생님. 전향서도 아닌, 준법서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2002년 1차송환에서도 제외되었다. 이 책을 보니 초등학교 교원인 ‘강 선생’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는데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바로 소환되셨다.
병문안을 다녀온 지 3주가 지났다. 선생님과 웃으며 헤어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폐에 찬 물을 더이상 빼낼 수 없어 큰 병원으로 옮기라 했다 한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선생님이 차디찬 병원의 시트가 아닌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57년 전 북에 두고 온 아내분과 두 아드님을 만날 수 있게, 4월 말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2차송환 의 계기가 마련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선생님도 그때까지 꼭 기운을 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