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서
사건번호 1014 나 16991(기)
성 명 ** 안학섭
주민번호 ** 300413-1256115
생년월일 ** 1930년 4월 13일
연락처 ** 010-9311-9772
본적 ** 경기도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목숙부락 13번지
주소 **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13번지
구속일시 ** 1953년 4월
출옥일시 ** 1995년 8월 15일.
구속사유 ** 본인은 개성에서 제학 중 6.25를 맞았으며 9.28 인민군의 후퇴에 따라 북상 했다가 강원도 정성에서 1953년도에 경찰에 의에 체포되어 국방경비법 32조 소위 이적죄와 간첩죄로 무기형 받음
국가의 불법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 전향 과정에서 인권 침해 당한 경위
본인은 무기형을 선고 받고 대구 형무소에 복역 중 1956년 8월부터 교무과에 불려나가 교무과 직원으로부터 전향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않겠다고 불응하니 그러면 불응 이유서를 쓰라 해서 썼습니다. (일종의 동태 보고서임) 그 후 1957년 초부터 불응 이유서를 확인하고 공장에 출역했습니다. 그해 4월 10일 공장에서 저녁식사가 끝난 후 감방으로 들어 올 때 소위 지도(폭력강패 재소자)라는 자들을 동원해 몽둥이를 들고 공장에서 감방출입구까지 양쪽으로 늘어서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1사 (특별사)의 한방에 7-8명 정도 들어갈 방인데도 18-20명 정도 집어넣었습니다.
감방 벽에 30센치 정도 떨어져 않게 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벽에 기댈 수도 없이 번호 순서대로 줄지어 앉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 이하의 열악한 처우 속에 강제 전향을 자행했습니다.
운동, 목욕, 서신, 접견, 의료(진찰 치료)등등을 중지하고 감방 안 나무변기에 가래침도, 양치질 물도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는 전향하지 않으면 가래침도, 양치질 물도 먹으라는 것이었지요. 이는 또한 야만인 사회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설거지 때 20여명이 먹은 젓가락을 한 번에 비비는 곳도, 40여개의 식기를 씻는 것도 소리가 난다고 못하게 했으며 이는 소리 내어 옆방과 통방한다고 끌어내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잠자리에 주는 담요는 낡은 재생담요라 먼지가 얼마나 나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창문조차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루바닥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기상해서 몰래 창문을 열었는데 그 때 햇살이 비추니까 방안 먼지가 창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마치 연기가 나가는 것 같아 불이 난 줄 알고 비상이 걸려서 방에 불을 끈다고 간수들이 쫓아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간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 몰아넣고 일발적인 전향강요만 당했던 것입니다.
당시 감방 먼지 때문에 기관지염이 걸려 지금까지도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1958년도에는 간수들에게 얼마나 폭행을 당했는지 늑막염에 걸려 좌측 늑막이 유착 돼 쭈그러져 있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고통을 주는 전향 강요 속에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어 단식으로 항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재은 소장은 강제 급식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의무과장은 의사로서 고문행위의 하나인 강제 급식은 할 수 없다고 사표를 내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무지막대한 간수 부장과 간수 주임, 간수는 의자에 묶어놓고 찍개로 입을 벌리게 한 후 왕 소금물을 고무호수에 강제로 주입시키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1961년 8월에는 전국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비전향자들을 대전형무소에 집결시켜 대전 특사에 수용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었습니다.
1968년도에 비전향장기수들 분산조치에 따라 4월에 광주형무소로 이감 왔습니다.
광주형무소 특사(제 2사)에 복역 중 동년 6-7월경에 교무과 김모라는 자가 가끔 한사람씩 불러내 전향하라고 폭행을 하고 했는데 동요 중 금산사는 70세 노인을 사방 관구실에 불러내 무릎을 꿀게 하고 전향하라고 발로 차고 밟고 하는 것을 본 후 이틀이 지나 본인을 불러냈습니다. 간수는 관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무릎을 꿀으라고 했습니다.
불응하자 구두 발로 사정없이 차기에 안 맞으려고 실랑이를 벌리는 끝에 사방담당인 간수가 미끌어져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계호과에 연락하니 5-6명의 간수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몽둥이로 무작정 두들겨 맞고 3주간이나 대소변을 받아내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8월부터 국가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비전향 말살을 위한 전향공작 전담반이 생긴 후 동년 11월 14일에 소제품은 자기 방에 놔두게 한 후 북풍바라지 쪽 0.75평 감방에 12-13씩을 집어넣었습니다. 15일 12시 민방위 훈련이 끝나자마자 어께에 떡봉이란 마크를 달고 손에는 감방 열쇠를 쥐고 허리에는 곤봉 수갑 포승을 차고 담배가지 피우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대대적인 고문구타를 자행했습니다.
각종 고문 구타를 자행한 강패 재소자는 정무종, 원삼실 노상기, 서원배였습니다.
이들은 이 감방 저 감방을 돌아다니며 불러내다가 고문구타를 자행하면서 전향강요를 자행하는 과정에서 동년 11월 말에 본인을 불러내어 특별사 계단 지하창고에 끌려 나갔습니다.
정무종 깡패 두목을 비롯한 깡패들은 물고문틀에 묶드니 드람통을 갔다 놓고 10리터짜리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우고 광목 수건을 물에 적시어 입을 덮고 코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전향할래 안할래 하며 폭행까지 자행했습니다.
끝까지 반항하며 거부하자 물수건을 얼굴 전체를 덮고 주전자 물이 다 덜어질 때까지 물고문을 자행했습니다. 고문 중 의식을 잃으면 잠간 멈추었다가 의식이 깨어나면 다시 시작하는 등 계속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물고문을 몇 차례 감행해도 소용이 없자 12월 엄동설한에 독방 마루바닥에 물을 뿌려 얼게 한 다음 옷을 다 벗기고 알몸둥이 상태에서 묶어놓고 꿇어 앉게 한 후 얼음물을 주전자에 담은 후 정수리에 일정한 양을 일정속도로 부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얼음위에 몸을 묶어 놓고 몽둥이로 발가락 뚝뚝 때리는 잔인한 고문으로 엄지발톱이 골마서 빠지고 지금은 얇게 나와서 걷는데도 많은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1974년 1월에 감방 창문을 떼어가고 내의도 담요도 없이 독방에 집어넣어서 손발을 비비고 주무르며 참고 견디는데 도저히 잠을 자지 못하고 6일을 견디었으나 7일째는 탈진되고 지처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속에 의식을 잃었는데 간수와 간수 부장이 와서 주무르고 손과 발을 꺽고 해서 의식을 깬 후 내의와 담요를 주어서 동사를 면하기도 하는 동태 고문을 당했습니다.
출옥 후에도 늦가을부터 손과 발 귀가 가려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인간이하의 열악한 처우 속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고문구타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 저서 하열과 상혈까지 하는 고통 속에서 전향강요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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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전주형무소로 이감 온 후 1978년 11월 경 악명 높은 강철영 교무과장과 한윤덕 교회사가 주축이 되어 대전에서 전주로 이감 온 동요 8명을 불러내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을 목격하고 전향공작과 고문을 중단하라고 단식까지 했는데 본인을 사방 관구실로 불러내 송 모주임과 황 모부장(별명은 각씨부장) 은 나를 묶어 놓고 전향을 강요하면서 폭행하는 것을 항의했더니 황부장이란 놈이 대가리를 마사버리겠다고 하면서 몽둥이로 머리를 마구 때려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었는데 옆에 있던 송주임은 그렇게 사정없이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듣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을 전향시키기 위해 가족까지 동원하여 이간질 시키었습니다. 경찰이 아버님을 찾아가 빨갱이라고 괴롭핌을 당해 결국 아버님은 정신이상에 노이로제까지 걸려 우편배달만 와도 안색이 변하고 벌벌 떠는 증세까지 발생해 시름시름 살다가 한 많은 60인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참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누이동생은 경찰에 불러가 어떤 연관으로 빨갱이 가족과 결혼했느냐고 하면서 1주 동안 경찰서에서 고생하다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출옥 후 현재도 형님이 일상적으로 감시 통제하고 있는 등 부자간 형제간의 인륜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재 고문 후유증으로 심장병 위장병 고혈압 정신적으로 늘 고문당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인간의 육신을 파괴시키고 가정까지도 파괴시켜 강제 전향목적을 달성하려는 당국이 저질은 불법한 만행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것이며 그동안에 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피해 배상을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하고 동시에 사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대도 국가는 고문구타 당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또는 배상액이 너무 많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변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가의 범죄사실을 덮으려는 당치 안은 별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날 국가 의문사위나 진실위에서 원고들이 당한 고문구타 등이 사실임을 가해자들의 증언과 일치해 다툼이 없다는 것이 재판에서 확인 되었는데도 이제 와서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재판장께서는 공명정대한 판결로서 국가의 불법한 공권력에 의한 고문구타 등의 강제 전향을 자행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청구한 피해배상액 그대로 판결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2014년 12월 30일 진술자 안학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