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쇠
이름 | 유영쇠 | |
출생 | 1928.10.30 | |
사망 | 2016.01.29 | |
본적 | 전북 김제 | |
가족관계 | 누님과 생질 | |
장지 | 금선사 | |
적용법규 | 국가보안법 | |
복역기간 | 30 | |
체포일자 | 1954.04.24 | |
석방일자 | 1983.02 | |
송환신청연도 | 2001년 | |
거주 | 전북 익산 | |
㈜김제시민의신문사 | 빨치산 활동 유영쇠씨 평전 출간-만경고 남궁윤교사 집필 | 2014.09.17. 아래 기사 붙임 |
자주시보 | [부고] 투철한 통일투사 유영쇠 선생 타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통일의 길에 함께 하기 위해 북녘 송환도 포기한 통일투사 | 2016-01-30 이창기 기자 이재봉교수의 회고도 있음. 아래 붙임 |
새전북신문 | "용인할 수 없는 역사도 기억할 가치 있다" 29년간 옥살이한 유영쇠씨 사연 담은 '유영쇠평전’ | 아래 붙임 |
소식지 | 혁명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겠다-전라도닷컴 기자 http://www.yangsimsu.or.kr/index.php?mid=board_Bzrm61&page=4&document_srl=17973 | 146호 |
| 소식지 | 인생여정 속에 곧 삶의 해답이 있어요 http://www.yangsimsu.or.kr/index.php?mid=board_Bzrm61&page=2&document_srl=18085 | 189호 |
[자주시보 기사 중]
내가 본 유영쇠 선생
이재봉 (원광대 사회과학대학장, 남이랑북이랑 대표)
2001년인가 2002년이었다. <북한 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하던 법대 학생이 수업 후 면담을 신청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장기수 어르신을 알게 됐는데 그 분께서 내 강의를 한 번 듣고 싶어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병실 옆 침대에 누워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빨치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듣고 있던 북한 관련 수업에 관해 소개했더니 호기심을 표하시더란다. 매 학기 두 강좌를 개설하는데도 수강 신청 기간 첫날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 있던 강좌인데다 일반인 청강생들도 더러 있을 때라, 누구든지 기꺼이 환영하겠다고 답했다.
그 다음 주 수업에 비쩍 마른 70대 노인이 맨 앞에 앉아 내 말 한 마디 놓칠세라 열심히 필기해가며 청강했다. 강의가 끝나자 그가 직접 물었다. 계속 들어도 되냐고. 한 달 쯤 지나 종강하게 되자, 학기 중간 이후부터 수강했으니 다음 학기 첫 수업부터 출석하고 싶다고 했다.
새 학기 개강부터 종강까지 16주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지각, 조퇴, 결석하지 않고 맨 앞자리를 지켰다. 서울에서 모임이 열려 동지들을 오랜만에 만나도 다음날 수업이 있으면 심야 버스나 기차를 타고 꼭 익산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아침 9시 시작하는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유영쇠 선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연을 들어보니 1950년대 초 고향인 김제 지역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1954년 붙잡혀 1983년까지 29년간 감옥생활을 했단다. 그리고 출옥 후 갈 데가 없어 부랑인 수용시설인 이리자선원에 몸을 맡기고 있다니 기막히게 기구한 신세였다.
그러나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천적이었다. 내가 외부에서 강연하거나 무슨 모임을 가져도 꼭 참석하고 싶어 했다. 내가 이끌던 <남이랑 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한 달 생활비가 5만원이라 택시는커녕 버스도 맘껏 타지 못한 채 고물 자전거에 올라 여기저기 강연이나 모임에 참석하며 회비도 꼬박꼬박 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