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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동준 - 두문동 노 투사 - 옥살이 31년 72세 배동준 - 이기형
   배동준

두문동 노 투사

- 옥살이 3172세 배동준

 

소백산맥은 태백산에서 고고의 소리를 내며 어머니 태백산맥의 품을 떠나 서남으로 달린다 소백이 태어나기 시작하는 서남 자락에 문수산(文殊山)이 우뚝 솟아 있다 문수봉(1200) 기슭에 아늑히 자리잡은 유루꼴(留老洞), 흥해(興海) 배씨(裵氏) 집성촌 60호가 옛농법으로 오손도손 농사를 지으며 5백년을 살아왔다 중시조 백죽당 상지공(栢竹堂 尚志)은 두문동(杜門洞) 72의 한 분. 배동준은 서당 훈장 조부 밑에서 6년 간 한문을 배웠다 조부는 손자에게 백죽당의 절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다 백죽당의 정신을 새겨들은 동준 청년은 두문동 아닌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해방과 동시에 남로당에 몸을 담자, 박해와 고문과 가막소가 그를 기다렸다 쇠꼬챙이로 찌르고 불인두로 지지고, 소방호스를 입에 처넣고 수압고문……. 새 바지가 넝마가 되고 가죽옷이 뚫어지도록 두들겨 맞았다 온몸에 끔찍한 피멍 1년 옥살이에 또 잡혀, 6·25 그날 서대문형무소에서 해방만세를 불렀다 입북, 남하, 15년 징역, 사회안전법으로 14년을 더 옭혀, 1989

가을에야 옛집으로 돌아와 90세 어머님 품에 엉엉 안겼다 노모는 노자를 안고 "내 새끼 살아 왔구나!"를 되뇌었다

 

대머리 배 할아버지는 지금

정겨운 향리 울타리마다 피고 지는

봉선화 백일홍 산수유 영산홍 라일락 제라늄의 꽃내음을 맡으며

대추 배 호두 감나무 복숭아 구기자나무를 바라보며

뒷산 앞산의 새소리 바람소리에 천년을 더듬으며

묵묵히 옛식으로 논밭을 갈고 거둔다

산에 올라 흥얼흥얼 땔나무를 베어 져오며

반평생 옥살이도 잊은 듯 산다

유루꼴을 두문동이라 부르며 산다

(1994. 3)

 

- 이기형 시집 <산하단심(山河丹心)>(삶이 보이는 창)

작성 : repatriation / 2025-08-20 2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