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자서전: <바람에 꽃잎은 져도>의 저자 박정덕 님(1부)
한국전쟁의 슬픈 사랑(1) - 빨치산 박정덕 할머니
2011년 자서전 제작 사업을 시작한 첫 해여서 아직은 생소한 지 지원자가 많지 않았는데 뜻밖의 전화한통이 걸려 왔다. 박정덕 할머님은 이전부터 준비한 자료가 있는데 죽기 전에 꼭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구청 사업 이야기를 듣고 문의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기획이 지역에 있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조망하고 이를 ‘개인사(個人史)’로 정리하여 하나의 ‘지역사(地域史)’를 모자이크 방식으로 축적하는 것이었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보라매동에서 만난 할머님은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연세가 많으시고(1930년생) 다리도 불편하셔서 필자의 차(코란도)에 오르내리기도 어려우셨는데도 불구하고 자료를 전달하기 위하여 직접 댁에 방문하여 수령하였다.
손으로 써 내려온 원고들은 처음엔 알아보기가 좀 어려웠는데 제작팀의 수고로 초벌 원고가 정리되었고 필자가 검토해 본 내용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청년시절 읽던 ‘태백산맥’이라는 소설 속 내용의 실재 주인공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현대사의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피해자와 패자의 입장에서 조망하기 어려웠는데 숨죽이며 살아온 박정덕 할머님의 삶을 통해 이를 깊이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이분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저자는 전남 곡성에서 1930년 1월에 1남 3녀의 지역 유지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님은 신학문에 깨어 있었던 개화파 지식인이었고 하나뿐인 오빠는 당시에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할아버지 때 소금관련 사업으로 재산을 축적하여 집안이 재정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마을에서 유지 집안에 속했다. 4남매의 막내인 저자는 온 집안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부잣집, 대문안집이라고 불렸었다. 바로 산 밑이 집이라 동네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문을 여닫는 소리가 그 밑 신작로 까지 웅장하게 들렸기에, 마을에서 그렇게 불렀다. 집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별채가 있었고 대지는 몇 평인지 모르지만 부락에서 제일 큰 대문안집이었고, 그리고 유실수를 많이 심어 온 집안에 없는 과일나무가 없었다...나는 우리 집에서는 물론이고 온 동네에서도 귀염둥이였다. 아버지께서 딸인데도 나를 많이 귀여워 하셨다.
아주 어렸을 때 아침이면 아버지께서 세수하고 들어가시면서, 내 이름을 부르시며 세수하고 빗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시키시는 대로 세수하고 빗을 들고, 아침인사를 하면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에는 남자로서는 드물게도, 손수 내 머리손질을 해주셨다. 아버지께서 내 머리를 만지실 때 나는 발을 오그렸다 폈다 하며 장난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께서는 내 머리를 갈래머리로 예쁘게 따서, 색색가지 댕기로 묶어 주시면 남들이 예술품이라 하였고, 학교 입학식 때도 구경거리였고, 선생님들도 아버지 머리 빗어 주는 솜씨를 예술품이라고 자자한 칭찬을 하셨다.
할아버지 제사가 여름에 있었는데 그때는 온 동네잔치였다고 한다....그 당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고 사랑을 많이 받고 살던 나는 꿈이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공주사범학교를 나와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오빠가 이화여고 거처 이화전문(지금의 이화여대)을 나와서, 대학교수가 되라고 참고서와 교재를 많이 사다 주었고, 강의록 같은 것도 사다 주면서 추천을 하니, 나의 꿈이 컸던 것은 속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은 세계 2차 대전으로, 일본 놈들의 정신대 때문에 좌절되었다.(바람에 꽃잎은 져도, 박정덕 저, 희망사업단(2011), 14,21,24쪽)
저자의 슬픈 현실은 결국 시대의 아픔과 함께 간 것이다. 누군들 불행을 선택한 사람이 있겠는가? 개인과 가정도 결국 시대와 국가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비극적인 민족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으로 저자의 삶도 같이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다음편에 계속
유명종/ 희망사업단
재창간 2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