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 뇌옥 22년 고성화(77)
20년 갇혔던 사람답지 않은 환한 얼굴
고성화는 환영대회에서 말했다
“…옥중 동지들은 웃으면서 죽어갔습니다. 역사의 승리를 믿었기 때문이죠…”
"제주도가 고향이죠? 고향을 다시 본 소감은요?"
"한마디로 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제주도 투쟁사를 요약한다면?"
“20년대 한학자 강창보 선생의 사회주의 독립투쟁 을 시발로 30년대 김명식 김문준 선생의 야체이카 운 동, 8‧15 해방 후 인민위원회 창설로 이어졌죠. 1947 년 3‧1절 투쟁, 1948년의 4‧3투쟁을 절정으로 제주도를 온통 피바다로 물들였건만… 제주도 4‧3투쟁을 박살낸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 같은 서북인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함석헌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부산시당을 이끌다가 1949년에 피검 2년 옥고
1973년 진해에서 다시 통일운동을 펴다가 그만
늠름하고 낙천적인 저 모습
‘직업적 혁명가란 저런 사람이 아닐까?’
(1993. 3)
- 이기형 시집 <봄은 왜 오지 않는가>(삶이 보이는 창)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