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형 선생님을 추모하며
원만하신 이
무던하시고
원만무구 만사 여유롭다
빨치산되시어 덕유산을 알았고
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음도 알았다시던
빨치산이 인민을 위한 빨치산임을 알았노라
내 고향 삭주
어머니산 지리
후퇴길 막혀 입산한 남덕유
첩첩산중, 토끼 발 맞추며 노루와 함께
돋는 해 지는 달 보며 맞으며
빨치산되고 인민의 고마움 알았노라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서럽도록 보고 팠는데. 이 막둥이가
십남매 중 끝 막둥이 찬형이가
대식구한테 모여 오순도순 나눌 때
그립습니다. 보고파집니다.
삭주의 깊은 골에 형제들이 그립습니다.
왜정 말엽 보국대 징집 받고
왜놈에게 봉사할 수 없다
징집 3개월만에 탈출에 성공
얼마나 목말랐던가
얼마나 보고팠던가
잃은 조국 목말라 했고
부모형제 보고파 했던 걸
막내의 응석도 잠깐
일제의 강점 사슬은 끊어지고
환희의 광복 몰고 오신 항일 빨치산
애국의 길 있다
민주청년동맹에 투신 보안대에 입대
38경비대서 38선 경비할 제
남녘의 김석원 똥줄을 빼았것다
송악산 전투
음파산 전투 20여차례 참전타가
부상당한게 평양공병학교에 입학과 졸업
최현장군 보위부대에 배속
보람있는 군대생활, 화선입당도 하고
이 때가 봄날이었나
그리운 옛날이여!
조국의 부름은 임무의 확장이러니
1950년 6월 29일 서울 입성
1950년 9월 낙동강전투에서 부상
북상루트는 차단되고
산골에서 낳고 자란 산사나이
덕유산 백운산 지리산의 빨치산이어라
전투기 동원에 정규군 물아칠제
파고드는 총탄에 발목부상
죽지못해 목숨 부지타가
환자트에서 포로가 됐다. 종막은 오고
이때가 1952년 1월 15일
엄동에다 전선에선 일진일퇴
광주포로수용소의 감금. 재판은
어찌 필설로 설명하리오
눈을 껌벅거리니 살았다 했을까
비상조치령으로 15년 언도
살아보니 결핵이라 65년 5월 출소
가는 곳곳마다 혁명의 씨앗 뿌려라
1967년 회복된 건강
결혼하여 남매를 두니 자랑이어라
그 후로 대전은
오르내리는 선생들의 간이역이 되고
동글 둥글 화색만면 넉넉하신 마음 씀씀이
허찬형 선생님의 본령이듯 하였으니
그립습니다. 허 찬 형 선생님!
통일되는 날에 평북 삭주 찾기로 해요
어머니당 보살핌 받고 계시는
동기간들 동지들 찾기로 해요
- 양희철 시집 <신념의 강자>(신세림출판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