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송환 희망자 김기찬

2차 송환 희망자 개별적인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는 상세페이지입니다.
김기찬

[약력] 김기찬
   김기찬

<약력> 김기찬

 

1919.04.10. 충남 논산시에서 태어남(당시는 익산군 황화면 봉동리 752번지)

여산공립학교, 청주상고 졸업 (정순택 선생의 3년 선배)

일본 동경척식대학 유학 중 마르크스-레닌주의 접하며 치안유지법에 걸려 징역을 살기도

1944.01. 학도병에 끌려가 일본 후쿠치야마 예비사관학교에서 6개월간 훈련

1945. 일본 동해방위사령부에 배치, 8.15해방을 맞음

1945.08.31. 귀국, 서울에서 건국준비위 청년위원부장으로 활동

미군정 실시로 청년위원 해제, 이리(익산)로 내려와 이리방성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이후, 상경해서 서울농업중학교 교원 재직 중 전쟁 발발

1950.09 인민군 후퇴 시 북에 가 인민군에 지원

1953. 전쟁 후, 함경북도 청진에서 이분순과 결혼, 두 아이를 둠

1954.~57. 함경북도 청진고 역사 담당 교원

1958.06. 39살에 남파, 1개월 만에 체포.

춘천지방법원에서 1심 무기징역, 고법에서 20년 선고받고 춘천형무소 수감

5.16군사쿠데타 이후 사상범들을 일제히 대전형무소로 집결

1968. 대구형무소 이감, 맹기남 선생 등과 함께 감옥 생활

1978.07.23. 20년 만기 출소

딸아이를 둔 여성 오영순을 만나 결혼.

2006.10. 북에 갈 여건이 된다면 언제든 북녘으로 보내주겠다던 부인이 9개월째 병상에 있어

2007.10. 2차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너무 기뻐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잘 이뤄져 반세기 넘게 분열돼 있던 남과 북이 통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책 분량이 됨

가족을 볼 수 없다는 아픔보다 통일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한 게 더 한스럽다

2015.07.08. 운명

작성 : repatriation / 2025-08-08 21:45:06 , 수정 : repatriation / 2025-08-27 15: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