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송환 희망자 이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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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천

[추모글-남녘 답사단] 이학천- 이학천 동지를 생각하면서-답사단
   이학천

[김영승칼럼] 페이스북인 듯

 이학천 동지를 생각하면서

 

이학천 동지는 1928115일 평북 용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항일운동을 하던 큰형님의 영향을 받고 항일 자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만주까지 오가기도 했다.

 

1950년 조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입대하여 최 전선에서 적들과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하여 야전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9.28후퇴를 맞았다.

 

북상하지 못하고 덕유산으로 입산하여 빨찌산 투쟁을 전개하던 중 전북 회문산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19528월 또다시 부상을 당하여 의무과 아지트에서 치료 받던 중 적들의 토벌 수색작전에 걸려들어 체포되고 말았다.

 

재판에서 20년 형을 받고 대전, 대구, 김천 등 감옥에서 16년을 사는 과정에서 196010월 감형을 받고 1969년에 출옥했다.

 

출옥 후 목수노동자로서 전국을 돌며 주택건설사업하면서 1973년에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다.

 

이 과정에 박정희 군사 팟쇼정원은 1975년에 세기의 악법인 사화안정법을 제정하여 비전향자들을 비전향을 이유로 감호처분을 시켜 청주 보안감호소에 수감시켜 징역아닌 징역 무기아닌 무기로 끝도 한계도 없이 구금시켜 전향강요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이학천 동지는 축농증으로 입안에 고름이 차서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위중한 환자를 치료는 고사하고 전향강요만 당하고 있었다.

 

이학천 동지는 하는 수 없이 머리를 굽히고 1980년에 출옥했던 것이다.

 

출옥 후 동지는 대구 지역 각종 기자회견이나 집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젊은이들을 겪려하기도 했었다.

 

이학천 동지는 20101월에 담도암 판정까지 받아 몇 번의 수술에도 효험없이 드디어 2010912일 오후 534분에 꿈에도 그리던 신념의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이학천 동지시여!

 

조국전쟁시기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적들의 모진 탄압을 받으며 끝까지 극복해야할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복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 마지막 죽음까지 올곧게 살다간 동지의 한생을 반추해 보면서 우리 후대들이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는 것이 역사의 부름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는 길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내려놓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0111일 전국 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작성 : repatriation / 2025-08-22 12:4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