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송환 희망자 박정덕

2차 송환 희망자 개별적인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는 상세페이지입니다.
박정덕

[약력] 박정덕
   박정덕

<약력> 박정덕

 

1930.01.25. 전남 곡성군 죽곡면 당돌리 '박부자집'에서 13녀 중 막내로 태어남

쌀밥만 먹던 박정덕은 소학교 3학년즈음 동네 친구집에서 꽁보리밥을 처음 보고 조금씩 사람 사이의 차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짐

석곡심상소학교 졸업

1947. 열여덟 살에 사회주의 운동가 이병관과 혼인

수배중인 남편을 찾던 경찰은 박정덕을 끌고가 협박과 고문을 하기도

1948.10. 여순군인봉기 시 시숙, 남편, 오빠 모두 입산

1949. 딸 낳음. 경찰의 탄압을 견딜 수 없어 갓 난 딸을 업고 남편 찾아 입산 후 석달 만에 하산,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

1950. 김제에 피신해있던 중 전쟁. 고향 곡성으로 귀환, 인민위원회 석곡면당위원장인 남편과 상봉. 가을 즈음 남편과 함께 입산

1951. . 화순군 백아산 도당학교에서 학습, 이후 오곡면 여맹위원장이 됨.

1952.2.10. 보급투쟁 중 구례 즈음에서 꼬리 잡혀 피신하다 오른쪽 다리 부상당함

1952.03.28. 오른쪽 다리 부상으로 50일간 석굴생활, 곡성에서 체포

그 과정에서 남편, 시댁, 친정이 모두 학살당함

오른쪽 다리 절단

1959.02.09. 8년 만에 출소

봉천동에서 독거 할머니 3명과 함께 기거하며 동사무소 지원금으로 연명

재혼하였으나 사별, 아들 한 명 두었으나 생활이 어려워 함께 살지 못함

2001. 2차 송환 희망

2004.08.23. 왼쪽다리 수술차 서울시립 보라매병원 입원, 심장 협심증 발견

2004.09.10. 심장수술

2011. 자서전 <바람에 꽃잎은 져도>(관악 희망사업단) 펴냄

이후, 백마 효 요양원 입소해 동지인 손영심, 김해섭과 함께 지냄

2022.10.02. 운명

 

작성 : repatriation / 2025-08-19 14: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