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송환 희망자 박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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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덕

[자서전-관악저널] 한국전쟁의 슬픈 사랑(2) - 빨치산 박정덕 할머니
   박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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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슬픈 사랑(2) - 빨치산 박정덕 할머니
■어르신 자서전: <바람에 꽃잎은 져도>의 저자 박정덕 님(2부)
기사입력 2013/12/16 [21:5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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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자서전: <바람에 꽃잎은 져도>의 저자 박정덕 님(2부)
한국전쟁의 슬픈 사랑(2) - 빨치산 박정덕 할머니

 
일본이 중일전쟁을 시작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동아시아 지역에도 퍼지게 되었다. 결국 전쟁에서 희생되는 이들은 힘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삽시간에 전쟁의 광풍에 휩쓸려 젊은 처녀들은 일본군 성노예로, 젊은 남성들은 강제 입대와 강제 노동으로 끌려들어갔다. 이에 손쓸 수 있는 방법은 빨리 결혼하는 길뿐이라 해방 전에 결혼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해방은 ‘밤손님’과 같이 순식간에 찾아왔고 저자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결혼을 급하게 진행하였다.

 
해방 후 신랑감이 일본에서 나왔고, 일본에서부터 사상이 물들어 해방 후 청년들과 몰려다니면서 좌익 운동에 빠져서 아주 무분별한 질서 속에서 나라는 혼탁하였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후 많은 사람들이 입산하였고, 나의 시숙은 일본에서 돌아와 아주 적극적으로 좌익운동을 도모하고 행동하였다. 우리 오빠도 함께 휩쓸려 다녔기 때문에, 이웃 동네에 있었던 시댁과 친정은 말할 수 없는 탄압 속에서 살았다. 심지어 시댁의 집은 지서에서 나와 불을 질러 없애는 바람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들들은 입산하고, 나는 시댁은 만나 보지도 못했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께서 혼인 언약은 해 놓았으니 이름이나 지어 놓자고 하여, 1947년쯤으로 기억되는 가을에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은 경찰을 피해 다니다 시간 맞추어 결혼식장에 나타나 결혼식을 하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산으로 갔다. (바람에 꽃잎은 져도, 박정덕 저, 희망사업단(2011), 24, 25쪽)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난 결혼이 뭔지도, 연애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랑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유부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졸속 결혼이 아니었다. 내가 좌익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말도 안되는 시련의 파도가 몰려온 것이다.

 
나는 친정에 남아 있었는데 삼일이 멀다하고 면, 지서, 군, 경찰서의 경찰들의 잡아다 갖은 고문을 했다. 그때 고문 후유증으로 귀 고막이 터져 왼쪽 귀는 먹통이다. 지금도 손가락 관절, 어깨의 통증은 지금의 내 나이도 많아서 아픈 탓 일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때의 후유증 같기도 하다. 내 나이 18세. 젊은 경찰들이 나의 육체를 욕심내고 입산자의 여자라는 죄목으로 얼마나 모질고 악독하게 고문을 하는지, 그 고통을 어떻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몸서리쳐지고, 떨리고, 눈물이 난다. 어느 겨울, 지서 마당에 짚으로 움막을 쳐 놓고 입산자 가족들을 모아 놓고 그곳에서 살라고 하여 나도 그곳에서 살았다. 물론 다른 입산자 가족들도 같은 고통 속에 살았지만, 나는 나이 젊은 탓으로 이런저런 구실로 나를 고문하며 더욱 못 살게 했다. (바람에 꽃잎은 져도, 박정덕 저, 희망사업단(2011), 25쪽)

 
1945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나라는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되는 아비규환과 같았다. 거대한 억압에서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억압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같은 민족끼리 이념으로 갈라져 원수같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영문도 모른 채 젊은 청춘의 낭만도 느껴보지 못하고 이념 대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영문도 모르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결혼한 것이 죄가 되어 모진 고문과 핍박을 당한 저자는 전주경찰서까지 끌려가서 여성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문을 당하게 된다. 정말이지 몸서리가 쳐지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처절한 고통속에 울부짖다가 저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더욱 처절한 전쟁의 한 복판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전쟁초기에 낙동강 전선을 제외하고 며칠만에 남한 전역이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숨어 다니던 남편이 공산당 간부가 되어 나타났고 저자도 남편을 도와서 선전부로 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반짝이던 시절도 잠시 한두 달 상간에 전세가 역전되면서 급하게 전선이 북쪽으로 밀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쳐 북으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은 다시 전선이 회복될 것을 기다리며 지리산에서 빨치산 생활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뒤숭숭해지면서 그곳을 모두 떠나야 된다고 하면서, 모두 얼굴빛이 어둡고 서류들을 보따리 보따리해서 싸고, 며칠 후 동네로 들어가던 발걸음이 차차 산으로 들어갔다. 나는 남편이 여자는 산 생활이 고생이라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여도, 또 떨어져 당할지도 모를 그 모진 고문이 겁나고, 부모님께서 맺어준 사람이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니 함께 하겠다고 악착같이 따라갔다. 우리 부모님께서 못 가게 하여도 부모님 말씀도 거절했다.
그때는 그동안 받았던 고문이 몸서리 쳐져서 남편을 따라 갔는데, 내가 입산하고 없으니 우리 부모님께서 나 대신 고문을 당하셨다. 시댁 식구들은 뿔뿔이 헤어져 숨어 살았지만, 친정 식구들은 그대로 살면서 우리 어머니는 연락병 노릇을 했고, 우리 아버지는 자금을 대주시고 나도 맨날 지서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연락병 역할을 하였다. 틈틈이 편지의 부피를 작게 하기 위하여 얇은 종이에 글씨를 작게 써 똘똘 말아서 어머니 옷고름이나 버선 속에, 신바닥에 넣어서 비상 장소에 갖다 두고 오시면서, 그곳에 있는 쪽지를 가져다주고 하시느라 아주 고생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당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고 아들, 딸, 사위들이 모두 연관이 되어 있으니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 마지못해 하셨던 것 같다. (바람에 꽃잎은 져도, 박정덕 저, 희망사업단(2011), 36쪽)

 
이같이 한국전쟁은 이념과 무관한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슬픈 민족의 상흔으로 지금까지 아픔으로 남아있다. 저자는 너무도 처절한 고문을 더 이상 당할 수 없어 남편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산으로 들어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빨치산으로서의 처절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애정도 없이 운명적으로 연결된 인연은 마치 봄꽃과 같이 순간 피었다 스러진다.
▶다음편에 계속
 
유명종/ 희망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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